. 놀기


일본인의 기원 - 이중구조설을 지지하는 논문 한국사



일본인의 기원에 대해 '이중구조설'이란 가설이 있었습니다.

이를 지지하는 근거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는데, 훨씬 자세하게 조사를 해 본 결과(100만개 가까운 SNP 조사) 다시 이중구조설을 지지하는 결과가 나왔네요.

더불어 논문 보충자료를 보면 한국인들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일본 본토인들과 북경 부근의 중국 한족인 것 같군요.

몽골인이나 시베리아의 야쿠트족은 유전적으로 한국인들과는 상당히 먼 거리


[연합뉴스]

"일본인은 토착민과 한반도인의 혼혈"

http://bit.ly/TEEbS7


[일본경제신문]

縄文・弥生人の「混血」 遺伝子解析で裏付け

総合研究大学院大など発表

http://s.nikkei.com/SvV7w0


[아사히 신문]

アイヌ民族と沖縄の人、遺伝的な特徴に共通点

http://bit.ly/Rt8z34


[산케이신문]

アイヌと琉球は縄文型 日本人の遺伝系統、ゲノム解析で裏付け

http://on-msn.com/QVdqsk




[논문]

The history of human populations in the Japanese Archipelago inferred from genome-wide SNP data with a special reference to the Ainu and the Ryukyuan populations

http://bit.ly/RWSEc2


[논문 보충자료]

http://bit.ly/SUNTP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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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의 논문에서도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것은 일본 본토인과 북경 한족인 것으로 나타났었습니다.

북경 한족 - 한국인 - 일본 본토인

요런 식으로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북경 한족과 일본 본토인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었지요.



Analysis of East Asia Genetic Substructure Using Genome-Wide SNP Arrays

http://bit.ly/QcKnUh




아래는 바로 위 논문에 실린 그림

 





잡담)


예전에 대륙삼국설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결과라고 하겠네. ㅋㅋ

한국인, 일본인, 북경 한족, 대만 한족 정도가 환족(?)이고 몽골인, 위구르인, 야쿠트족, 필리핀인, 라후족 등은 환족이 아닌 모양입니다. ㅎㅎ





고려 광종의 연호 광덕(光德) 한국사

 
고려 광종의 연호 광덕(光德)
 

고려 광종이 광덕(光德)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런데 광덕(光德)이라는 연호가 사용된 시기를 두고는 2년간이라는 둥, 4년간이라는 둥, 12년간이라는 둥 여러 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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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서 검색한 각종 백과사전에 나타난 광덕[光德] 연호


<다음 백과사전>

광덕[光德]

고려시대 연호.

광종이 즉위하면서 쓴 연호로 960년 준풍(峻豊)으로 바꿀 때까지 썼다. 쓰기 시작한 연대에 대해 〈고려사〉에는 950년으로, 〈해동금석원 海東金石苑〉에 적혀 있는 광자대사비명(廣慈大師碑銘)에는 광덕 원년이 949년으로 되어 있는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조선시대와 달리 유년칭원법(踰年稱元法 : 즉위 다음해를 원년으로 삼는 법)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고려사〉에 나타나는 950년보다 여러 금석문에 나타나는 949년을 광덕 원년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연호


<두산대백과사전>

광덕 (光德)

  고려 광종(光宗)이 사용한 연호로서, 시행된 연대에 대하여 《고려사》와 금석명(金石銘) 사이에 1년의 차이가 있다. 《고려사》에는 '광종 경술…건원 광덕(光宗 庚戌…建元 光德)' 즉 950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청나라 학자 유연정(劉燕庭)이 우리나라의 금석문들을 모아 1831년(순조 31, 청도광 11)에 8권으로 편찬한 책》에 수록된 광자대사비명(廣慈大師碑銘)에는 원년이 949년으로 표시되어 있다. 2년간 사용하다가 준풍(峻豊)으로 바뀌었다.

 

<야후백과사전>

광덕 (光德)

요약

고려 광종 때의 연호.


설명


고려 광종 때의 연호. 949년 광종이 즉위하면서 이 연호를 사용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는 950년을 광종 1년으로 잡고 있지만 금석문의 자료에는 949년을 광종 1년으로 잡고 있는데 이것은 유년칭원법(踰年稱元法;즉위 다음해를 원년으로 삼는 법)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려에서 후주(後周)의 연호인 광순(廣順)을 사용한 것은 953년(광종 4)으로 《고려사》에는 광종 2년부터 후주의 연호를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고려와 후주간의 교빙(交聘;나라와 나라 사이에 서로 사신을 보내는 일)과 금석문의 내용으로 보아 고려의 연호는 광덕 4년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두산백과사전 EnCyber>

광덕    |  光德    

고려 광종(光宗)이 사용한 연호.

시행된 연대에 대하여 《고려사》와 금석명(金石銘) 사이에 1년의 차이가 있다. 《고려사》에는 '광종 경술…건원 광덕(光宗 庚戌…建元 光德)' 즉 950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 수록된 광자대사비명(廣慈大師碑銘)에는 원년이 949년으로 표시되어 있다. 2년간 사용하다가 준풍(峻豊)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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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光德)원년이 고려사에는 950년이라고 나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동금석원에 포함된 광자대사비명(廣慈大師碑銘)에는 원년이 949년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遼東行部志'라는 것을 보니 광덕(光德) 연호에 관한 내용이 있네요.

금나라 사람이 1190년 요동지방의 절에서 고려에서 발간된 불경을 보았는데, 그중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密多經) 卷首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고 합니다.

菩薩戒弟子高麗國王王昭以我國光德四年歲在壬子秋敬寫此經一部


高麗國王王昭는 광종이고 我國은 광종이 자국인 고려를 지칭한 말. 광덕 4년 임자년이면 952년이니, 광덕 원년은 949년이 맞는 것이 됩니다.


* 고려 광종 때 연호인 광덕(光德) 원년은 949년이 맞고, 고려사 950년이 광덕 원년이라고 나타난 것은 1년 착오가 있었다. 광자대사비명(廣慈大師碑銘)과 일치함.

* 광덕(光德) 연호는 최소 4년까지는 사용되었다.

 

《遼東行部志》  (金)王寂 撰 (일부)

乙卯觀銀字藏經上題雲高麗王王堯發心敬造大晉開運三年丙午二月日又大般若波羅密多經一部卷首雲菩薩戒弟子高麗國王王昭以我國光德四年歲在壬子秋敬寫此經一部意者昭謬將沖幼獲嗣宗祧機務既繁安危所繫是以每傾心於天佛因勤格以祈求所感必通事無不遂故欲報酬恩德輒有此願謹記予按宣和六年徐競撰進高麗圖經首著高麗王王氏宗系雲王氏之先蓋高麗大族當高氏政衰國人以王建賢共立為君長時後唐長興三年也請命於明宗封高麗國王石晉開運二年建卒子武立乾祐末武卒子昭立自昭而下凡十一傳至於堯堯之襲封歲月雖不可考以其父運立於趙宋神宗元豐六年運立四年卒子堯立即是堯立於哲宗元祐二年也今銀字經卻雲大晉開運三年丙午高麗王王堯發心敬造以予考之堯即建之十三代孫即建卒於開運二年豈有堯造經於開運三年耶斷無是理況堯父名運雖高麗用中原正朔在本國亦當迴避此必妄耳昭之所書經雲以本國光德四年歲在壬子秋敬寫此經據圖所載昭之父武卒於乾祐末按五代史劉知遠即位之明年改元乾祐終於三年而已既雲武卒於乾祐末是必乾祐三年也計昭之嗣立當契丹嗣聖滅石晉之後終劉漢之世昭未嘗朝貢至郭周廣順二年昭方遣廣評侍郎徐逢來今經之跋文雲以我本國光德四年既當時高麗未臣中國宜止用本國年號也然光德年號當更考於他書則真贋可知矣

 


요동행부지 전문 링크

http://bbs4.xilu.com/cgi-bin/bbs/view?forum=wave99&message=24812


영인본은 국가전자도서관에 있는 요해총서 안에서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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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사광자대사비(大安寺廣慈大師碑)

( http://gsm.nricp.go.kr/_third/user/search/KBD007.jsp?ksmno=3105 )


光德二年歲次庚戌十月十五日立 鐫字文旻

기유(949) - 광덕 원년
경술(950) - 광덕 2년
신해(951) - 광덕 3년
임자(952) - 광덕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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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대사 비문 해석문

( http://www.koreatemple.net/korea_temple/traditional_temple/place/view.asp?temple_seq=1793&category_id=13&content_id=7057 )


대안사는 전남 곡성에 있는 절로서 지금은 태안사라고 불리는 모양입니다.


통일신라 때 세워진 비문도 있네요.

대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비(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碑)

( http://gsm.nricp.go.kr/_third/user/search/KBD008.jsp?ksmno=2818 )


전남 곡성이 통일신라 때나 고려시대에 무주(武州)에 속해 있었군요. 왜정 때 일본인들이 역사왜곡하려고 중국에 있는 비석을 몰래 뽑아 발동선으로 싣고 와 박아 놓은 것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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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선사 탑비는 없어졌던 것을 다시 새겨 세운 것이라는군요. 절에 비문이 문서화되어 남아 있었던 듯.

광자대사 비문은 지금은 판독이 안된답니다. 비문은 해동금석원에 들어 있는 것. 김정희가 탁본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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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공중전화…年700억 적자 잡기장



핸드폰 신호음

"아빠 저예요."

"어~ 웬 일이냐?"

뚜우~ (어쩌구 저쩌구) 통화를 원하시면 1번, ...

중학교 다니는 아이가 급한 일이 있을 때 공중전화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면 이렇게 시작한다. 수신자 부담 통화. 핸드폰을 사 달라고 조르곤 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문자질할 것이 뻔하여 사주지 않았다.


핸드폰의 보급으로 공중전화를 쓰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쩌다 공중전화를 걸어야 할 때 요즘에는 공중전화 박스 찾기가 참 어렵다.

지금도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 핸드폰이 없는 사람들 - 외국인 노동자, 초중고생, 신용불량자, 노인
* 핸드폰이 있는 사람들 - 덜렁거리다 핸드폰을 다른 곳에 놓고 왔을 때,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때, 보안을 요하는 통화시(예를 들어 마누라 몰래 다른 여인에게 전화할 때 )


돈 안되면 축소 혹은 폐지되는 것이 운명이다. 필요로 하는 소수의 어려움은 회사 이익 앞에서 무시된다.

공기업 사영화가 진행될수록 이런 현상이 점점 많아지게 될 것이다.




방통위, 1만7천대 축소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122562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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